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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 History
역대 CES를 빛냈던
우리 곁 혁신 기술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올해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CES가 열렸다. 1967년 처음 시작된 이래 근 60년간 무수한 혁신 기술의 데뷔 장이 된 CES.
세상을 놀라게 했던 많은 기술 중 우리 삶을 바꾼 아이코닉한 제품들을 되짚어본다.

미국 자율주행차 개발 업체인 웨이모가 CES 2025에서 선보인 6세대 완전 자율주행 기술
Keyword 1.
컴퓨터용 마우스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용 입력 도구인 마우스. 이 마우스 역시 CES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것도 무려 1968년에!

컴퓨터용 마우스를 발명한 사람은 미국 스탠퍼드 연구소의 연구자 더글러스 엥겔바트였다. 그는 플래니미터(구적계)의 원리를 이용해 컴퓨터에 X축과 Y축 좌표를 더욱 쉽고 직관적으로 입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기존의 화살표 키는 너무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1963년 11월 14일, 그는 새로운 기기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버그’라는 이름의 기기는 직교하는 2개 휠의 움직임으로 화면상 좌표를 변화시키고, 원하는 좌표로 커서가 이동하면 스위치를 눌러 좌표를 나타내는 기기였다. 그는 이 기기가 사용하기 편하고 직관적이며, 키보드와의 궁합이 뛰어나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듬해인 1964년 그는 빌 잉글리시의 도움을 받아 설계를 정교하게 다듬었고, 여기에 쥐를 의미하는 마우스mouse라는 이름을 붙인다. 전선으로 컴퓨터에 연결된 모습이 쥐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컴퓨터 화면 속 커서의 별칭이 고양이cat였던 것도 한몫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우스는 1968년 CES 행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 ❶ 플래니미터: 곡선으로 둘러싸인 평면 도형의 면적을 측정하는 기계
엥겔바트 마우스
마우스를 발명한 더글러스 엥겔바트
Keyword 2.
VCR
VCRVideoCassette Recorder(비디오카세트리코더)은 이제 다른 저장 매체에 밀려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영상과 음성을 자기 테이프magnetic tape에 녹화하고, 이를 TV로 재생하는 기기다. 그러나 이 구식 기기 역시 한때는 당대의 최첨단 기술이었다. 필립스사는 1970년 CES 행사에서 자사가 개발한 가정용 VCR인 N1500을 공개했다. 그전까지 VCR은 단가가 5만 달러나 되는 고가의 물건이라 TV 방송국에서만 사용했다. 그러나 필립스가 선보인 VCR의 단가는 900달러에 불과했다.

이제는 완전히 구식이 되어버린 기술이지만 VCR의 사회적 파급력은 정말 대단했다. VCR은 일반인에게 처음 보급된 전자식 영상 저장 매체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처음으로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영상 매체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영화를 대여하는 대여점 산업까지 만들어내며 영화 감상 방식을 일변시켰다. 즉, 기존의 영화관과 TV 방송국이 독점하고 있던 영화 감상의 지분 일부를 뺏어오고,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캠코더(가정용 비디오카메라, 1981년 행사에서 등장)의 보급을 통해 누구나 쉽게 비디오테이프로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방식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VCR-N1500
Keyword 3.
콤팩트디스크
1981년 행사에는 콤팩트디스크CD, Compact Disc가 선을 보였다. 필립스와 소니가 공동 개발한 이 매체는 광학 방식으로 판독 및 재생 가능한 디지털오디오 데이터(74분 분량)를 저장할 수 있었다. 이후 콤팩트디스크는 오디오뿐 아니라 동영상, 사진 등도 기록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콤팩트디스크 역시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업계에 준 영향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오디오 데이터의 기록 및 재생 방식의 디지털화를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동시에 디지털신호 처리 기술, 데이터 저장 기술, 레이저 판독 기술 등의 발전도 부추겼다. 이 중 데이터 저장 기술은 이후 DVD, 블루레이 등 더욱 발전된 광학식 디지털 저장 매체 등장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또한 컴퓨터마다 이 콤팩트디스크에 데이터를 기록하고, 기록된 데이터를 재생할 수 있는 CD-ROM 드라이브가 설치되면서,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콘텐츠, 대규모 데이터셋의 유통이 더욱 용이해졌다. 이는 소프트웨어 업계와 멀티미디어 응용프로그램의 성장에도 공헌했다.

콤팩트디스크에 수록된 데이터는 아날로그 방식의 저장 매체(LP, 자기 테이프)보다 높은 내구성과 동적 범위, 낮은 잡음을 자랑했다. 또한 편의성과 이동성, 접근성과 경제성 면에서도 뛰어났다. 원하는 데이터(음악)를 빨리 찾아내기도 편했던 콤팩트디스크는 이후 홈 엔터테인먼트의 핵심이 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디지털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에 밀려 그 존재 가치가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콤팩트디스크야말로 우리가 집 안에서도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한 일등 공신 중 하나였다.
콤팩트디스크
Keyword 4.
플레이스테이션
CES 행사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체험해보는 사람들
1991년 CES 행사에서 일본 소니사는 닌텐도사와 합작으로 개발한 CD-ROM 방식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의 시제품을 선보인다. 사실 컴퓨터 게임으로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무려 1950년대부터 존재해왔고, 그것의 실행에 특화된 컴퓨터인 게임기는 플레이스테이션 이전에도 다양했으며 긴 세월 동안 꾸준히 발전해왔다. 하지만 3차원 그래픽의 처리가 가능한 플레이스테이션은 분명 기존 게임기와 비교해 차원이 다른 게임 체험을 제공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단순히 ‘기존 제품보다 좀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게임기’가 아니었다. 단순한 게임 머신이 아니라 모든 홈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 개발자들의 목표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은 CD와 DVD를 재생할 수 있었으며, 네트워크 연결도 가능했다. 이로써 게이머 간 대전이 가능해지고, 각종 다운로드 콘텐츠도 즐길 수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무진장의 콘텐츠를 TV를 통해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수도꼭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도꼭지를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상당 부분을 독점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 21세기를 대비한 개발자들의 포석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진 않았다. 소니의 원대한 야망은 이후 결국 넷플릭스 등의 다양한 OTT 서비스들이 대신 구현하게 되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거치식 게임기라는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려고 했던 개발자들의 선구안만큼은 현재도 유의미하다.
Keyword 5.
가상현실
2013년 행사에서는 오큘러스사의 가상현실VR 체험 기기 리프트Rift가 등장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상현실 체험 기기라고 불릴 만한 기기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 제품은 화면 재생률과 해상도가 높은 디스플레이, 사용자 머리와 손의 움직임에 대한 추적 성능, 직관적이고 정확한 터치 컨트롤러, 더욱 가볍고 편안한 디자인 등으로 기존 제품과 격을 달리했다. 이 제품으로 가상현실 업계는 다시 활력을 얻었고, 경쟁사들의 대항 제품 개발도 활발해졌다. 오큘러스사는 플랫폼 오큘러스 스토어도 만들어 가상현실 콘텐츠 보급에도 앞장섰다.

오큘러스사가 촉발한 혁신 기술로 인해 가상현실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은 더욱 높아졌다. 또한 게임, 엔터테인먼트, 사회관계망 유지, 교육 및 훈련 등에도 가상현실이 더욱 많이 사용되었다. 물론 반드시 헤드셋을 착용해야 체험할 수 있다거나, 일부 사람들에게 ‘가상현실 멀미’를 일으키는 등 넘어야 할 산도 아직 많이 남았지만 말이다.
Keyword 6.
자율주행자동차
엄밀히 말하면 CES의 주인공은 가전제품이다. 자동차 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CES에 새로운 기술을 탑재한 자동차들이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자동차의 구성 요소 중 ‘전자제품’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자율주행 성능을 가진 자동차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차량들은 다양한 센서로 수집된 정보를 통해 인공지능이 교통 상황을 파악하고 운전자의 조작을 보조(차로 이탈 방지, 차간 간격 유지 등)한다. 종국에는 운전자의 개입 없이도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차량이 자율주행자동차의 최종 진화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차량들은 말 그대로 ‘달리는 가전제품’이기에 CES에도 당당하게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인 인공지능은 그 외에도 실로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60여 년 동안 CES에서 선보인 혁신 기술을 몇 페이지의 글로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서 소개된 기술들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CES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2025 CES에도 어김없이 첨단 가전제품들이 출품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개발자들의 실력을 뽐냈다. 첨단 기술이 바꾸어갈 미래의 일상생활이 궁금하다면 눈을 들어 CES를 꼼꼼하게 살펴보길 바란다.
오큘러스 리프트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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