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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협업을 통한 시너지로 연구의 경계를 확장하다
김재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자파솔루션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

고분자 및 복합 소재는 현대 과학과 기술 발전을 이끄는 핵심 소재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고분자는 분자량이 큰 유기물로 이루어진 소재로 가벼우면서도 유연하고 뛰어난 기계적, 열적, 화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플라스틱, 고무, 섬유, 코팅제 등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며, 최근에는 기능성 고분자와 스마트 소재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복합 소재는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을 결합해 단일 소재보다 더 향상된 성능을 발휘하는 다기능성 재료다. 탄소섬유 강화 복합 소재, 유리섬유 강화 복합 소재, 나노 복합 소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복합 소재는 경량성과 강도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 항공우주, 자동차, 전자 소재, 바이오메디컬 분야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나노 소재와의 융합을 통해 고분자 복합 소재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연구가 활발하며, 친환경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소재 개발도 중요한 연구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연구 협업을 통한 통합 시너지 효과

연구 생활을 이어가면서, 연구는 더 이상 개별적인 탐구만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고분자, 나노 필러 및 복합 소재 같은 다학제적 연구 분야에서는 다양한 전문성을 결합해 더 혁신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연구 협업을 통해 개별 연구자들의 지식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단순한 합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20년 동안 연구하면서 단순히 협력자를 찾는 것보다 각자의 강점이 조화를 이루도록 협업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예를 들어, 고분자 복합 소재 연구에서는 소재의 합성과 물성 분석, 응용 분야에 따라 다양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이때, 소재 합성 전문가, 이론적 분석을 담당하는 연구자, 실용화 가능성을 평가하는 엔지니어가 협력하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협업은 연구 방향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며, 이를 통해 연구의 깊이와 폭이 확장될 수 있다. 연구 협업은 단순한 업무 분담이 아니라 연구의 통합적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보관 안전성을 대폭 향상한 잠재성 경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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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액형 에폭시용 잠재성 경화제 합성 사진
이액형 에폭시는 경화제와 수지를 혼합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혼합 비율 오류나 작업 시간 제한, 경화 불균일성 등의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또 혼합 후 즉시 사용해야 하며, 잔여량이 낭비되는 단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화제와 수지가 사전에 혼합된 일액형 에폭시가 주목받고 있다. 일액형 에폭시는 사전 혼합된 상태로 제공되어 사용이 간편하고, 혼합 과정 없이 작업 시간을 단축하며 품질의 일관성을 보장할 수 있다. 특히 잠재성 경화제를 활용하면 특정 조건(열, 자외선 등)에서만 경화를 시작하도록 제어할 수 있어 보관 안정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일액형 에폭시는 상온(25℃ 이하)에서만 안정성을 유지해 고온에서 보관이 어렵고 화재에 취약한 한계가 있다.

내 연구팀은 성균관대학교 구종민 교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에폭시/맥신 일액형 솔루션’을 개발했고,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메터리얼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되었다. 이 솔루션은 에폭시 수지, 고분자 이미다졸 기반 잠재성 경화제 입자, 그리고 이차원 나노 소재인 맥신으로 구성된 혁신적 소재다. 특히,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물리적·화학적으로 반응성이 억제된 잠재성 경화제를 도입해 60°C의 높은 온도에서도 180일 이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성공적으로 개발되었다. 기존 제품이 25°C에서 약 40일간 안정성을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발전이다. 또한 맥신 나노 소재는 기존보다 난연성을 한층 강화하며, 전기전도성과 열적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난연 성능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새로운 솔루션은 기존 대비 한계농도지수LOI를 12% 증가시키고, 최대열방출량pHRR을 85% 감소시켜 난연 등급 최고 수준인 V0 등급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화재에 취약했던 기존 제품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 기계적 물성에서도 인장강도 46%, 충격강도 158%의 성능 향상을 달성하며 안정성과 내구성을 모두 갖춘 소재가 되었다. 두 연구팀은 향후에도 맥신의 높은 전기전도성을 활용해 전자파 차폐 성능과 줄 히팅 특성을 갖춘 복합 소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 ❶ 경화제와 수지를 별도로 혼합하여 사용하는 에폭시로, 혼합 후 일정 시간 내에 경화가 시작됨
  • ❷ 경화제와 수지가 이미 혼합된 형태로 제공되어 별도의 혼합 없이 바로 사용 가능하고, 잠재성 경화제가 필요함
  • ❸ 연소에 필요한 공기 중 산소 농도를 의미함. 높을수록 난연성이 우수함
  • ❹ 소재가 연소할 때 순간적으로 나타내는 열의 총방출량을 나타내고, 낮을수록 난연성이 우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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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된 구형 잠재성 경화제의 전계방출주사 전자현미경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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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수준의 기계적 물성 달성한 100% 자기강화복합재료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와 같은 미래 이동 수단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연료 효율성을 높이면서 탄소 배출은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물성을 띠면서 재활용도 가능한 새로운 소재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기강화복합재료SRC, Self-Reinforced Composite는 가격이 저렴하고, 경량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강화재와 기지재가 동일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폐기 및 재활용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이 때문에 항공기 등에 사용되는 탄소섬유강화복합재료Carbon Fiber-Reinforced Composite를 대체할 차세대 복합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나는 한양대학교 김성훈 교수, 전북대학교 김성륜 교수와 함께 폴리프로필렌PP, Polypropylene 고분자 한 종류만을 사용한 100% 자기강화복합재료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는 자기강화복합재료의 제조공정에서 유동성 및 함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강화재 혹은 기지재에 화학적으로 다른 성분을 혼합해왔기 때문에 물성과 재활용 가능성 모두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공동 연구팀은 4축 압출 공정을 통해 폴리프로필렌 매트릭스의 사슬 구조를 조절해 용융점, 유동성 및 함침성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개발된 자기강화복합재료는 접착강도, 인장강도 및 충격 저항성이 기존 연구 결과 대비 각각 333%, 228%, 2700% 향상된 최고 수준의 기계적 물성을 달성했다. 소형 드론의 프레임 소재로 해당 재료를 적용했을 때 기존 탄소섬유강화복합재료 대비 52% 가볍고, 비행시간은 27% 증가해 차세대 모빌리티 적용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❺ 기지재matrix: 혼합 비율에 따라 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재료
  • ❻ 함침성impregnation: 물질이나 기체 등이 다른 물질로 흡수되거나, 침투되거나, 묻혀서 그 안에 흡수되는 것
  • ❼ 4축 압출 공정: 금속, 플라스틱, 나일론 등의 원료를 사용해 3차원 형상의 복잡한 구조물을 만드는 제조 공정으로, 3축 압출과 달리 회전축이 추가되어 길이, 너비, 높이와 함께 회전축도 제어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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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배움과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출
나는 연구자가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하고, 기존의 한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연구를 하다 보면 익숙한 영역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지만, 나는 오히려 새로운 분야의 도전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고분자 및 복합 소재를 연구하면서도, 여기에 스마트 기능을 더할 방법을 고민하고, 새로운 개념의 재료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항상 새로운 배움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특히 최근 연구하고 있는 스피로피란 기반의 비트리머 소재는 내가 기존에 다루던 복합 소재와는 다른 특성이 있지만, 이러한 도전이 오히려 연구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한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탐색하고, 서로 다른 개념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을 경험하며, 연구에서의 배움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특정 연구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연구의 경계를 확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학문과 기술을 융합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인 협업과 학습을 통해 한층 발전된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연구자로서의 성장과 더불어, 이러한 도전이 결국 더 의미 있는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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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자파솔루션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퍼듀대학교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수행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자파솔루션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20여 년간 고분자 합성, 구조-물성 상관관계, 잠재성 경화제, 자기강화복합재, 극한 환경 대응 소재 등 다양한 소재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전문가로 성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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