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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중심 디자인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꾼다
신태호 랩엠제로㈜ 대표
김승호 사진 이승재

물질이 미래를 만든다. 철의 발견은 인류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고, 플라스틱은 고작 100년 만에 인류 생활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신태호 랩엠제로㈜ 대표는 소재에 깃든 가능성을 보고 디자이너 생활을 정리하고 회사를 창업했다.
현재는 신소재 ‘그래핀’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그가 디자인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신태호 대표를 만나본다.

랩엠제로는 어떤 회사인가요?
랩엠제로는 소재를 연구하고, 그 소재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입니다. 크게 소재 연구개발과 제품 서비스 두 가지 파트로 나뉘어 있어요. 현재 연구하는 그래핀이라는 소재는 잠재성이 크고 응용 범위가 넓어서 다양한 제품으로 개발 중입니다.
랩엠제로가 추구하는 소재 중심 디자인이 궁금합니다.
소재를 먼저 연구해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생활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목표를 먼저 생각한다기보다 소재 연구의 결과물을 토대로 제품을 만드는 거예요. 일반적으로는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과 소재를 선택하잖아요. 저희는 순서가 바뀐 거죠.

예를 들어, 저희가 연구개발한 소재 중에는 항균성이 뛰어난 그래핀 복합 소재가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 공기 살균 제품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제품을 개발하게 되었죠. 앞으로도 이러한 방식으로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소재 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2011년에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차세대 디자인 리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 있어요. 소재 연구부터 전시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 당시 저는 한지로 의자를 만들어서 ‘100% 디자인 런던’ 박람회에 참가했어요. 그게 저에게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소재 선택은 디자인 과정 마지막 부분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본 거죠.

옛날에 ‘지갑’이라고 한지로 만든 갑옷이 있었대요. 전통 문헌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활용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한지 장인분들과 함께 여러 실험을 통해 결국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강도의 의자를 완성했어요. 실험에 성공해서 박람회 전시도 한 거고요.
‘소재와 디자인을 통해 미래를 제시한다’는 슬로건으로 회사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속 가능한 미래입니다.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 거예요. 회사 내부에서도 “우리 미래상은 지속 가능하면서 진보하는 미래다”라고 비전을 공유하고 있어요. 바다를 멀리서 보면 수평선으로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끊임없이 파도가 치잖아요. 그 안에서 순환하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어요.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미래고 그 목표를 위해서 제품으로 서비스하는 거예요.
사실, 소재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환경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재가 근간이잖아요. 이 소재를 통해 선순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쓰고 버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다음까지 연결돼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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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표가 이끄는 랩엠제로는 그래핀 복합 소재를 이용해 항균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생활용품 위주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랩엠제로는 원천 소재인 ‘산화 그래핀’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점이 특징적인데요. 많은 소재 중에 그래핀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디자이너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의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아무래도 한국보다 유럽에서 소재 연구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저는 왕립예술대학에서 공부했는데, 이 학교는 디자인과 기술을 융합해 사업으로 연계하는 프로젝트가 매우 활발한 곳입니다.

그렇게 영국에서 공부하다가 황기병 박사를 만났어요. UCL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친구인데, 그 친구가 그래핀 기술을 소개해줬어요. 그래핀과 이산화타이타늄이라는 소재의 결합 기술이었고 저는 그걸 가지고 졸업 논문 작업을 진행한 거죠. 그 인연이 이어져 함께 한국에 돌아와 사업 아이템을 개발한 겁니다. 그 친구는 현재 우리 회사의 CTO를 맡고 있어요.
현재 랩엠제로가 주력 연구하는 그래핀 복합 소재는 무엇이고, 어떤 제품으로 활용하고 있나요?
그래핀은 그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복합 소재로 써야 해요. 현재 저희도 굉장히 다양한 물질로 복합 소재를 연구개발하고 있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그래핀 회사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물질과 어떻게 혼합해서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 고유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거죠.

어쨌든 그래핀을 활용하려면 기능화해야 해요. 저희는 항균성을 중점으로 보고 있어요. 그래핀은 강도도 높고 열전도성, 전기전도성도 좋아요. 그래핀 개발 회사들은 주로 전도성 기능 쪽을 연구개발하죠. 저희는 오히려 항균성을 중점으로 개발해서, 이 기능을 잘 살릴 수 있는 생활용품 위주로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랩엠제로 그래핀 생산기술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최적화 공정입니다. 그래핀은 생산하기 까다로운 소재예요. 공정이 까다롭다 보니 시장이 확 열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단계고요. 현재 개화 단계라고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래핀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면서 생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저희는 최적화 공정을 통해 원하는 품질까지 생산할 수 있어요.

그래핀이 수천, 수만 층이 쌓여 있는 게 흑연인데요. 그걸 1~5레이어의 나노 단위로 분리하는 게 기술의 핵심이에요. 수십 층, 수백 층까지는 분리가 쉬운데 나노 단위 분리는 까다로워요. 분리할 때 산화 과정을 거치는데, 온도 조절, 산화제 등 공정 레시피가 복잡해요.
R&D에서 상용화까지의 길이 쉽지 않지만, 랩엠제로는 소재 연구개발부터 제품 생산까지 전 단계에 관여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실현화가 더 수월합니다. 제품 개발 리소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증 작업이 더 쉬운 편이에요. 보통 산업용 소재는 실제 적용까지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계속 연구개발만 하다가 회사가 성장하지 못할 수 있는데, 전 단계를 담당하면 여러 단계를 밀접하게 진행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역으로 여러 산업에 더 쉽게 활용할 수도 있어요. 검증된 소재는 오히려 적용하기 더 쉽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조명 제품을 보고 대기업 1차 벤더사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성과도 나오고 있고요.
신소재 기술 분야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갖춰야 할 소양과 자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계속 시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아요. 특히 소재 분야는 한 번의 시도로 성과가 나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양하게 시도하고 조절하며 방향성을 잡아야 하는 거라서요. 그래서 저는 요즘 최적화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한정된 자원이라 실패도 한정된 실패일 테니까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성공을 위한 실패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R&D에서는 자유로운 사고가 필수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A를 활용해 B를 만들고 싶다고 할 때, R&D의 핵심은 단순히 가장 빠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B에 도달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R&D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신 대표님과 랩앰제로의 향후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제 목표는 랩엠제로가 창의성과 최적화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면서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랩엠제로의 목표는 소재를 통해 미래를 먼저 제시하고, 주위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기업 정신이고, 혹은 개척 의지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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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호 랩엠제로㈜ 대표
신태호 대표는 누구
대기업 디자이너로 5년 정도 일하다가 소재에 깃든 가능성을 보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소재로 미래를 제시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영국에서 황기병 박사와 소재를 공동연구했으며,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랩엠제로를 설립했다. 현재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 소재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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