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Changing Tomorrow> Alchemist Diary
생각만 해도 말이 나온다?
초연결사회를 만들 초능력 기술의 탄생!
음성 의사소통을 위한 완전이식형 폐회로 Brain to X 개발
김아름 사진 이승재

일론 머스크의 신경기술 기업 뉴럴링크Neuralink와 비견되는 연구소가 있다. 한국의 서울대학교의학연구원 정천기 교수의 알키미스트 프로젝트팀.
이들은 뇌 신호를 활용한 쌍방향 신경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Brain to X’ 과제를 수행 중이다.

s3_1_1.jpgs3_1_1-mo.jpg
언어는 뇌 발달과 존재의 궁극적인 이유
우리는 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류는 수천 년간 인간의 뇌를 연구해왔다. 하지만 궁금증은 여전하다. 체중의 2%밖에 차지하지 않는 뇌는 체내 에너지의 20%를 소비하는, 가장 복잡한 생물학적 구조임이 틀림없다. 신경외과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정천기 교수가 뇌에 관해 설명했다.

“뇌 전체를 대표하는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언어’입니다. 보통 뇌의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에서 언어 기능을 담당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뇌가 작용하는 것을 보면 우반구의 역할이 상당하지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선 뇌 전체를 다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크고 촘촘하게 발달한 뇌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우리가 언어를 쓰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브레인-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 연구가 활발해진 지금, 그가 해당 과제의 최종 목표로 ‘말소리를 통한 원활한 의사소통’을 꼽은 것 역시 그 생각의 일환이다. 지금껏 인간의 운동 기능, 사고 기능 향상에 이바지한 BCI 연구는 많았지만, 타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으로 발달한 언어 기능에 관한 연구는 드문 편. 정 교수 또한 수십 년간 기본적인 인간의 기능과 뇌신경 활동 간의 관계를 연구한 끝에 뇌의 궁극적인 기능 ‘언어’에 도전하게 되었다.
s3_1_2.jpgs3_1_2-mo.jpg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인터페이스 기술
본 과제의 최종 목표는 사고나 질병으로 말을 하거나 듣는 기능을 상실한 사람에게 타인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음성으로 표현하고, 타인의 말을 실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연구팀은 5살 어린아이가 구현할 수 있는 문장 단위의 소통 수준까지 고도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터페이스 기술이 핵심이다. 인터페이스란 서로 다른 두 시스템, 그러니까 사용자와 기계 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달리 말하면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의 기술인데, 이것이 있어야 정보를 주고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 뇌의 전기적 신호를 말소리로 바꾸고,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를 다시 전기신호로 뇌에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실제 사람이 목소리를 내서 말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뇌의 신호를 받은 외부 기기가 이를 음성으로 변환해 전달하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말소리일까.

“기술은 사람을 위해 발전해야 합니다. 특히 신체의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가장 가치 있지요. 장애는 저마다의 불편을 수반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가장 힘들고 외로운 장애는 말을 하고 듣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외국인들 사이에 외국어를 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홀로 있다면 어떨까. 번역기로 소통은 할 수 있겠지만, 스스럼없이 웃고 떠드는 무리 가운데서 고립감을 느낄 터. 수화로 의견을 전하는 청각장애인의 불편 또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s3_1_3.jpg
정 교수팀은 주사기를 통해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대뇌피질 겉면에 부착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실패를 위한 과제, 실패를 통해 발전하는 기술
정 교수 연구팀의 과제는 ‘쌍방향 의사소통 기술’을 연구한다는 데 남다른 의미가 있다. 현재 ‘나’의 의사를 전하는 기술은 비교적 많은 곳에서 연구되고 있고, 정 교수팀 또한 관련 기술의 특허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 타인의 말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연구는 극악의 난이도로 꼽힌다. 정 교수 역시 꾸준한 실패를 통해 정답으로 가는 실마리를 찾고 있다. 답보 상태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매일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폐회로Closed-loop 제어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폐회로 제어 시스템을 단순화해서 쉽게 설명하면 ‘검증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뇌 신호는 매우 복잡하고 불안정하므로 특정 단어나 문장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때문에 사용자가 의도한 문장과 출력한 문장의 의미가 같은지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에 폐회로 제어 시스템을 통해 출력한 합성된 음성을 사용자에게 전달해 자신의 의도와 같은지, 다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로써 의사소통의 오류를 줄이고 원활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초연결사회를 위한 원천기술의 탄생까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뇌에 전기적 신호를 가하고, 뇌의 신호를 읽어낼 것인가. 뇌에 전극을 가하는 과정에서 위험성은 없는지도 짚어봐야 할 문제, 이에 관해 물었다. 정 교수는 “기술의 이익이 월등하다면!”이라고 답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죠. 전자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눈이나 관절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마트폰을 놓지 않아요. 왜일까요? 비교하기 힘들 만큼 편하니까요.”

평생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온 그였다. 뇌의 신호를 읽는 전극 장치 개발에도 안전성에 중점을 두었다.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다른 연구에서는 두개골을 여는 시술을 통해 전극을 삽입한다. 뇌 속에 위치해 신호를 읽는 기능은 뛰어나지만, 부작용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정 교수팀은 주사기를 통해 전극을 삽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술을 위해 두개골을 열 필요가 없으며, 대뇌피질 겉면에 부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뇌의 겉면에 동전 크기의 전극을 붙이는 개념이다. 현재 개발된 BCI 인터페이스 전극 가운데 가장 위험도가 낮고, 추후 제거에도 용이하다.

“인터페이스 기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원천기술을 잘 구축한 후에는 무엇이라도 연결할 수 있거든요. 향후 어떤 기기와도 연결할 수 있고, 반대로 뇌의 여러 기능을 향상하는 데도 쓰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서울대학교의학연구원 신경과학연구소는?
인류가 탐험해야 할 마지막 미지의 영역인 ‘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신경계의 작동 원리와 뇌질환의 기전을 밝혀내고자 다양한 기초 연구 및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3_1_4.png
인터페이스 기술의 초격차 ‘그래핀’에서 찾았다
우리 연구팀은 인터페이스 전극 개발기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여기에는 함께 연구 중인 연세대학교 안종현 교수의 공이 절대적이었는데, 지금도 그날의 감동이 여전합니다.

1단계 연구를 진행하던 2021년이었습니다. 그래핀Graphene으로 전극을 만들자는 계획은 있었지만, 실제 프로토타입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안 교수가 뿌듯한 얼굴을 하고 연구실 문을 열었고, 제 눈앞에 시제품을 꺼내놓았습니다.

‘이거면 되겠다!’ 그제까지 세워둔 모든 가설과 이론이 실제로 가능할 것이란 강한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핀은 아주 얇은 단층 구조를 가집니다. 전도성도 탁월하지요. 기존의 모든 소재와 비교해도 그 성능이 압도적입니다. 안 교수 역시 한참을 고생했을 겁니다. 그리고 해냈지요.
s3_1_5.jpg
정천기 교수는 인터페이스 연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있다.
s3_1_6.png
  • 생각한 바(의도)를 말소리로 변환(디코딩)하는 상상 발화imaginary speech 기술 관련 특허출원 중
  • 세계 최고의 인터페이스 전극(하드웨어) 개발 기술 확보, 식약처 허가 진행 중
s3_1_7.png
  • 타인의 말소리를 전기신호로 전환하는 인코딩 기술 및 폐회로 제어 시스템 개발 중
  • 인터페이스 전극에 그래핀 적용해 고효율 기기로 고도화
s3_1_8.png
  • 청각·언어 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일반인과 다름없이 전화 및 대면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 뇌신경 감지 및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음악이나 영화를 뇌에 직접 입력하고, 기억 및 개념을 직접 입력하는 학습 기능 등에도 가능성을 제시
그 감동과 별개로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식약처에서 승인을 받지 못했거든요. 당시만 해도 체내에 그래핀을 삽입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없었으니, 식약처의 판단도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었어요. 저희는 고민 끝에 그래핀 대신 금나노 기술을 바탕으로 다시 전극을 개발했고, 지금은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후 그래핀을 품목에 추가할 계획입니다.

비록 세계 최초의 그래핀 전극이라는 타이틀은 놓치고 말았지만, 결국에는 우리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 ❶ 그래핀: 탄소 동소체 중 하나로 현재 각광받고 있는 신소재 중 하나이다.
s3_1_9.png
정천기 교수
고려대 세종캠퍼스 전자 및 정보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전문의로 척추종양, 뇌전증 분야 수술·연구 권위자로 꼽힌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