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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술의 문을 여는
5가지 질문
최태영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양자기술은 왜 우리에게 필요하며 양자기술이 해결하려고 하는 구체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양자기술로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무엇보다 양자역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양자기술의 기초 지식을 다질 수 있는 다섯 가지 질문을 통해 양자기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자.

양자기술은 물리학의 양자역학에 기반한 물리법칙과 다양한 공학 분야가 결합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싱 등을 개발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최신 기술이다. 양자기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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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
: 여기에 있을 확률은 얼마일 것이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시적인 세계를 다루는 물리법칙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물리학 분야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물리학에서는 물체를 위로 던지면 중력에 의해 떨어지며, 해당 물체의 시간에 따른 위치는 뉴턴의 법칙을 활용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언제, 어느 위치에 행성이 있을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측정’이란 행위는 물체나 행성에 빛을 쪼여주거나 방출 또는 반사된 빛을 관측함으로써 해당 물체의 시간에 따른 위치 등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으로, 양자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예를 들면 원자, 전자와 같이 매우 가볍고, 작은 입자들의 경우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빛을 쪼이면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빛을 받자마자 빛과 상호작용에 의해 해당 입자들이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버린다. 즉, 입자들이 정확히 어떤 시간에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파악할 수 없고, 대신 ‘여기에 있을 확률이 얼마일 것’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물체를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입자’라고 표현하기보다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파동’이라고 다루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묘사가 된다.

즉, 양자 물체는 측정하기 전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확률적으로만 아는 파동의 형태로 묘사되고, 측정이라는 행위를 하면 해당 입자가 원래 위치를 벗어나 어디에든지 ‘검출’되기 때문에 하나의 입자처럼 결정된다. ‘컵’이 하나의 양자 물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우리가 컵을 보기(측정하기) 전에는 컵은 책상 위의 각각 왼쪽, 오른쪽, 또는 왼쪽, 오른쪽 동시에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때, 우리가 컵을 보게(측정하게) 되면 측정 행위와 동시에 컵의 위치가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결정된다. 만약 100번을 반복해서 측정했을 때 컵이 왼쪽에 50번, 오른쪽에 50번 나타나면 ‘컵은 측정되기 전에는 파동으로써 왼쪽과 오른쪽에 동시에 겹쳐져 있었구나’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일반적인 물리학과는 아주 다른 물리 현상을 수식화, 정량화, 이론화한 물리학의 분야가 바로 양자역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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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핵심은 무엇인가?
: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
그렇다면 양자역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건 무엇일까? 바로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이다. 우선, 양자 중첩부터 살펴보자.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가 측정하기 전, 컵이 왼쪽과 오른쪽에 동시에 겹쳐 존재했던 상태가 바로 양자 중첩이다. 물리적인 방법을 이용해 핵의 궤도를 돌고 있는 전자에 레이저와 같은 빛을 정밀하게 제어해 가해주면, 위의 컵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전자의 양자 상태가 왼쪽, 오른쪽 동시에 겹쳐 존재하는 양자 중첩의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이때, 양자기술에서는 이러한 양자 상태를 디지털 정보에 대응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자가 각각 왼쪽, 오른쪽에 있을 때를 0, 1의 상태로 일대일 대응시킬 수 있다. 우리가 흔히 0과 1에 대응되는 양자 상태를 양자정보의 기본단위로 정의하며, 이를 큐비트라고 부른다. 위와 동일한 방식으로 물리적인 방법을 이용해 여러 전자의 양자 상태를 동시에 다량의 양자 중첩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면 첫 번째 전자가 0, 1이 중첩된 상태, 두 번째 전자가 0, 1이 중첩된 상태 등을 모두 고려할 수 있고, 결론적으로 00..., 01..., 10..., 11... 등의 모든 가능한 상태가 동시에 겹쳐져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고전물리학에 따르는 디지털 정보의 경우에는 한 번에 00... 또는 01... 또는 10... 또는 11... 중에서 하나의 상태만 존재할 수 있는데 양자기술에서는 양자 중첩에 의해 모든 가능한 상태를 초기에 준비할 수 있다. 따라서 양자기술을 사용하면 초기에 하나의 정보만을 시작으로 연속적으로 직렬 처리하는 고전적인 연산에 비해 한 번에 모든 정보를 동시에 병렬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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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인 양자 얽힘이 있다. 양자 중첩은 하나의 양자 물체(예를 들어, 전자)에서 정의된 0과 1의 상태를 겹치게 하는 방법이지만, 양자 얽힘은 2개의 양자 물체에서 정의된 각각의 0과 1의 상태를 서로 겹치게 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2개의 양자 물체의 양자 상태(정보)가 얽히고, 하나의 양자 물체의 양자 상태를 측정하자마자 다른 양자 물체의 양자 상태도 빛의 속도의 한계와 상관없이 동시에 결정된다. 예를 들어 2개의 양자 물체를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해 얽힘 상태로 만들었다고 하고, 두 양자 물체를 서로 아주 먼 거리로 떨어뜨려 놓았다고 가정하자. 그런 뒤 첫 번째 물체의 양자 상태를 측정하면 바로 그 순간 빛의 속도와 무관하게 멀리 떨어진 두 번째 물체의 양자 상태가 즉시 첫 번째 물체의 양자 상태와 동일하게 결정되어버린다. 즉, 한 물체의 양자 상태를 알면 다른 물체의 양자 상태도 알 수 있다는 놀라운 특성이 있으며, 원칙적으로는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양자 전송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 이 두 가지가 바로 양자역학의 핵심이며, 많은 수의 큐비트를 대상으로 고신뢰도의 상태에서 두 핵심 요소를 수행할 수 있다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싱 등의 양자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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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술이 구현되면 신물질 개발, 초전도 물질 탐색, 새로운 약물 개발 및 치료법 발견 과정이 획기적으로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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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술이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문제는?
: 양자컴퓨팅과 데이터 보안 분야
양자역학의 핵심적인 개념을 활용하면 양자기술은 우리가 직면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슈퍼컴퓨터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계산 문제를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을 사용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즉, 현재의 암호 해독 방식이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 재료공학, 약학 등의 연구에서 엄청난 계산량을 요구하는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 양자통신은 양자 얽힘을 활용하기 때문에 누군가 해킹을 시도하면(즉, 양자통신 도중 중간에서 누군가 측정하게 되면), 전송받는 사람이 전달받고 있는 양자 상태가 바로 결정돼버리기 때문에 해커는 원래 전송하고자 하는 양자통신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전송받는 사람은 본인이 해킹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따라서 도청을 방지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통신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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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통신을 활용하면 해킹으로부터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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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술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 기술적·물리적 분리화와 안정화
양자기술 상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양자 물체는 측정하기 전에는 파동성을 띠며, 측정하면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 여기서 ‘측정’이라는 개념은 주위와의 ‘극도로 약하고 미세한’ 상호작용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미세한 전기장, 자기장, 빛이 양자 시스템에 새어 들어가면 바로 양자 물체의 파동성이 파괴된다. 즉, 양자 물체에서 정의된 큐비트는 파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환경과 극도로 ‘잘’ 분리되도록 유지되어야 하고, 이러한 큐비트에서 작은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능동적으로 ‘잘’ 수정하는 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따라서 양자기술 상용화에 어려운 점은 대규모의 큐비트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기술적, 물리적으로 분리화·안정화시키는 것과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양자 오류를 정정하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유수의 산학연이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많은 성과가 나오고 있다. 물론 대규모 큐비트를 활용한 양자기술의 상용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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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술로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 신물질 개발, 정보보호, 스마트시티
이러한 대규모 큐비트를 활용한 양자기술이 구현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선, 정보 보안으로 개인, 단체, 정부의 정보보호가 향상될 것이며,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신재생에너지를 위한 신물질 개발, 초전도 물질 탐색, 새로운 약물 개발 및 치료법 등을 발견하는 과정이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도 있다. 또 양자센서를 활용해 보다 정확한 데이터 분석으로 더 안전한 자율주행, 편리한 스마트시티 등 일상생활에서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 날씨 예측 등 다변수 문제를 좀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더 나아가 AI 기술과의 접목이 가져올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양자기술의 구현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 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여러 산학연이 양자기술 개발과 관련된 연구에 힘쓰고 있으며, 양자기술의 상용화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개발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양자기술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며 이를 위한 연구와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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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물체에서 정의된 큐비트는 파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기장, 자기장, 빛 등의 외부 환경과 반드시 잘 분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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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영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박사후 연구원, 미국 IBM 알마덴Almaden 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를 포함, 총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50편 이상의 국제 학회 발표를 했다. 현재는 이온 포획 기반의 양자컴퓨팅 시스템 제작 및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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